후배님들 전상서(前上書)
Date 2017-04-01 18:41:58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hit 458
신승원
박사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seung3885@skku.edu

대학에 들어온 이후부터 생각하더라도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 써본 경험이 없다. 이번 미래/젊은 BT 피플 원고를 준비하면서 현재 나에게 당면한 일들과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넓은 시야에서 반추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원고를 준비하는 시점은 박사 졸업을 약 2주 앞둔 상황인지라 대학원생으로 시간의 끝에서 처음 대학원에 진학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대학원에 들어오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딱히 취업 고민을 해본 경험이 없고 단지 유년 시절부터 생각해온 “연구”, “과학자”, “흰 가운과 시약 병”과 같은 애매한 키워드들을 통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학부와 동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잘한 선택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당시에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일들에 필수적인 노력을 하기 귀찮아서 손쉽게 진학할 수 있는 동대학원에 진학하는 길을 택했고, 좋은 학점을 따는데 크게 신경 쓰지않았던 것 또한 비슷한 이유라고 기억한다. 홀로 집과 학교를 왔다갔다하는 지루한 대학 생활에 비해 연구실에 들어와보니 선배와 동기간에 쉴 새 없이 뒤엉키는 작은 사회에서의 생활이 매우 재미있었다. 잘 나오지 않는 실험 결과들과 부족한 공부량은 변명과 임기응변을 늘게 도와주었고, 그러면서 나름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방식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인 사유와 생각의 차이로 인해 몇몇 동기들이 연구실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점차 연차가 쌓이면서 연구실 생활에 대한 나름의 개똥 철학도 갖게 되었다. 싫은 사람 좋은 사람이 있었고, 연구실 생활 전반에 대한 불만과 짜증도 있었다. 연구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과 실험을 통한 결과 도출을 주로 하는 특성상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연구실 내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모난 성격을 다른 동기들이 많이 이해해주고 토닥여주지 않았다면 학위 과정을 끝마치는 것이 훨씬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행운아였다고 자부하고, 동기들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써 다 표현하기 어렵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내적인 갈등을 이겨낸 방식에 대한 것이다.

때때로 정말 하기 싫었고, 때때로 그만두고 싶었다. 이런 스트레스를 버텨내며 하루하루 지내야 한다는것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맞는지 끊임없이 되뇌었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는 결론을 얻기가 어려웠다. 잘되어서 혹은 잘되었다고 생각해서 마치 성공 수기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정류장 하나를 먼저 지나온 사람으로써 중간에 이 길을 포기한 안타까운 동료들에게 다하지 못한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담담하게 남기고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이야기이고, 개성이 뚜렷한 대학원생들에게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으나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희망한다. 원체 잘난 박사가 되신 분들이나 대학원 생활이 너무 행복한 미친놈들은 제발 이 글을 읽지 마시라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다.

 

a5450f1b8c0eac32cbfbcfdd4991b117_1491039675_8936.jpg

학부생 시절에 미생물학 수업을 수강한 경험이 있다. 당시 미생물학 수업에서 다룬 내용은 정말 백지와 같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교수님의 말씀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는데,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했다. “힘든시기가 와서 주어진 일들을 모두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두 눈을 꼭 감고 손에 쥔 가지에 매달려만 있으라. 그러면 어느새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떨어지고 홀로 매달린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당시에는 단순히 그럴싸한 명언 정도로 생각하였는데,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는 마음 속에 깊이 묻어 의지하는 깃대와 같았다. 항상 단점이 문제가 되고 부각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외부의 상황을 뜻대로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아볼 수 있는 것은 내부의 문제다. 개인적으로 실험을 할 때에도 공부를 할 때에도 글을 쓸 때에도 꼼꼼한 최종 마감을 해내지 못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지는 않겠다. 많은 단점들의 실제적인 문제는 노력하면 어느정도 해결 할 수 있겠으나 노력을 너무 많이 해야하고 그러다 보면 전반적인 일의 능률과 삶의 질이 매우 낮아지는 것으로 인해 해결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점차 거대해지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모두 망가지기 시작한다. 피어나는 곰팡이와 같이 생활을 좀먹는 암울함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만을 남기고 모두 잠식한다.
어느 날부터 미생물학 수업에서 들었던 조언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듯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 집중하는 것보다는 그저 당장에 주어진 일들을 가능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반드시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실수를 줄이고 마감을 잘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름의 노력을 하고 업무를 끝내는 것에 집중하였다는 것이다.
매번 실수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질책이 이어졌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실수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으로는 아무런 해결이 된 것이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자세를 가지고 나서 쉬는 시간에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혹여 노력의 천재와 같이 24시간 내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하루 중 쉬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혹은 누군가 나를 원망하고 있을 때에는 매 시간이 지옥과 같다. 쉴 만해 지게 되니 그럭저럭 살 만해 지게 된다.
생각보다 변화는 빠르게 왔다. 빨리 변화가 왔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변화가 빠르게 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보다 문제가 발생하기까지 과정이 수월해지고 여유가 있었다. 문제를 극복하기보다 자주 실수하는 부분의 정답이 외워지기도 하였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 또 틀렸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가장 크게는 시간이 가면 모든 문제가 희석되기 마련이고, 나름 적응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가면 생각만큼 달지 않더라도 과실이 맺히고, 놀랍게도 그 과실들은 스스로와 닮았다. 그 못생긴 과실들에 스스로 장점이 서려 보이더라. 나름 뿌듯하고 기뻤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며 결국엔 정류장 하나가 다 지난다. 박사가 되더라. 정말이다. 그리고 나서 발전이 있었을까?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실수도 잦고 쉬운 일 하나 없다. 곰곰히 변한 점들을 생각하면 좀더 여유로워졌다는 것과 염치가 없어졌다는 것 정도가 있겠다.
이런 방식과 생각이 한심하게 보일 수 있다. 시간을 낭비하고 발전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해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누구라도 힘들고 찌든 일상으로 인해 학위 과정에서 쫓겨나지 않을 자격이 있다. 더 솔직하게 그러한 누구나 과정의 끝에서 졸업장을 받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좌절과 스스로 원망 속에 이 길을 떠난 동료들은 그 누구라도 본인보다 학위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래서 혹여 이러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 누구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 완벽한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신뢰받는 학생, 좋은 동료, 뒷담화 없는 선배가 될 수 없다고 해서 더 중요한 것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런 사람 아무데도 쓸모 없다.
아마 희망하는 대로 이 글을 읽고 힘든 시간에서 위안을 찾는 이가 거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혹시나 단 한명이라도 본인과 같은 별종이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런 사람 둘만 옆에 있어도 마음 든든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